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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고현민훈 Date2026-09-20 08:35 View147 Count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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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 중인 정의신의 연극 ‘스미레 미용실’. 극 중 인물들은 역사의 폭력에 휘청거리면서도 서로 지지고 볶으며 끈질기게 살아간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정의신(아래 사진)은 한국 국적의 재일교포 2.5세 극작가 겸 연출가다. 그는 한·일 양국의 경계인인 ‘자이니치’의 삶을 무대에 그려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자이니치(在日)는 일본에서 ‘자이니치 코리안’의 줄임말로, 식민지 조선 시절 생활고 탓에 바다를 건넌 노동자와 1940년대 태평양전쟁 당시 강제 징병된 군인 및 징용 노동자에 뿌리를 둔 사람들이다. 일본 신국립극장과 한국 예술의전당이 2008년 자이니치를 소재로 공동 제작한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 용길이네 곱창집’은 당시 양국 연극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신국립극장은 ‘이를테면 마치 들에 피는 꽃처럼’(2007)과 ‘야끼니꾸 드래곤’(2008)에 이어 2012년 ‘스미레 미용실’을 올리며 1950년대부터 1970년대에 이르는 ‘자이니치 3부작’을 완성했다. 2016년 신국립극장 재연 이후 10년 만에 한국 무대에 오른 ‘스미레 미용실’은 현재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10월 3일)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정의신은 한국에서 이 작품을 선보이게 된 데 대해 “꿈만 같다”며 남다른 감회를 전했다.
세종문화회관 제공
‘야끼니꾸 드래곤’이 1970년대 초반 간사이 지역 공항 근처 판자촌을 무대로 삼았다면, ‘스미레 미용실’은 1960년대 중반 규슈 탄광촌을 배경으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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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작품 모두 자이니치 가족을 통해 디아스포라의 비극과 생명력을 보여주지만, ‘스미레 미장원’에는 역사의 더 어두운 상흔이 짙게 배어 있다.
이 작품은 정의신이 2005년 영화 ‘신상: 탄광촌의 세레나데’의 시나리오를 준비하기 위해 규슈 탄광 지대를 취재하면서 시작됐다. 1960년대 일본 정부가 석탄에서 석유 중심으로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면서 정부와 재벌의 유착 속에 탄광의 안전 예산은 깎이고 대규모 인원 감축이 이어졌다. 결국 참혹한 탄광 폭발 사고가 발생했지만 국가와 기업은 책임을 회피했다. 정의신이 취재하며 만난 일산화탄소 중독 환자의 부인은 그의 뇌리에 깊이 남았다. 난폭해진 남편과 자식들을 건사하며 겪은 생활은 처참했으나, 그녀는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국가와 기업을 상대로 끈질기게 보상 투쟁을 이어갔다. 정의신은 “포기할 상황에서도 끝까지 존엄을 지키려 싸우던 그 강인한 여성이 주인공 수미의 출발。이었다”고 회고했다.
극의 무대는 자이니치 2세인 수미(일본명 스미레)가 운영하는 작은 이발소 겸 가정집이다. 언젠가 번듯한 건물에 자신의 이름을 내건 진짜 ‘미용실’을 열겠다는 소박한 꿈을 품은 채 하루하루 가위질로 버텨내는 공간이다. 또한 이곳은 수미의 언니 하츠미와 동생 하루미 등 자매들 부부와 이웃들이 모여드는 사랑방이기도 하다. 그러나 가난과 차별 속에서도 온기를 나누던 이들의 일상은 탄광 폭발 사고로 산산조각 난다. 수백명이 목숨을 잃고 살아남은 이들마저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뇌 손상을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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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미와 하루미의 남편 역시 어린아이처럼 퇴행하거나 발작을 일으키고, 남겨진 가족들은 붕괴된 삶을 힘겹게 버텨내야 한다.
1945년 해방 후에도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자이니치들은 1960년대 탄광 산업 몰락과 함께 또다시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일자리를 찾아 오사카 등 타지로 떠나거나 ‘지상낙원’이라는 북한의 선전에 속아 북송선에 몸을 싣기도 했다. 이번 작품은 에너지 산업 전환기의 쇠퇴, 참혹한 산재 사고, 그리고 북송 사업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자이니치 가족의 디아스포라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특히 한국 공연에서는 ‘야끼니꾸 드래곤’에 출연했던 김문식을 비롯해 전무송, 최지연, 전국향, 송영주 등 베테랑 배우들이 참여해 밀도 높은 에너지를 뿜어낸다.
‘스미레 미용실’은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담고 있지만 결코 신파로 흐르지 않는다. 여러 차례 눈물을 훔치게 할 만큼 깊은 페이소스가 흐르지만, 극 중 인물들은 서로 티격태격하고 지지고 볶으며 삶의 소란스러움을 멈추지 않는다. 슬픔을 웃음으로 치환하며 기어코 살아남고 마는 질긴 생명력이야말로 정의신 연극의 진수다.
식민 지배와 강제 징용, 전후 차별과 산업재해라는 역사의 폭력이 자이니치의 삶을 사정없이 뒤흔들었지만, 수미와 이웃들은 서로의 상처를 끌어안으며 긴 법정 투쟁을 버텨낸다. 정의신은 “이 작품이 과거 자이니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주변의 가족에게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사건이자 내 가족의 이야기로 받아들여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거친 땅에서 묵묵히 꽃을 피워내는 들꽃처럼, 한국어로 제비꽃을 뜻하는 ‘스미레’는 가혹한 시대 속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았던 보통 사람들의 끈질긴 존엄을 상징한다.
는 가혹한 시대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