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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고현민훈 Date2026-09-18 07:35 View157 Count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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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인 지역과인재㈜ 연구위원
며칠 전 밤, 나는 늦은 시간 불 꺼진 거리의 한 무인가게에 들렀다. 계산대에는 사람이 없고, 천장의 카메라 한 대만 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물건을 고른 한 젊은이가 단말기에 카드를 대고, 조용히 값을 치른 뒤 문을 나섰다. 문득, '자유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쳤다.
일찍이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Friedrich Hayek)는 『자유헌정론(The Constitution of Liberty)』에서 이 오래된 진실을 언급한 바 있다. 자유란 남의 강제 없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상태이지만, 그 결과를 온전히 자기 몫으로 감당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이다. 자유란 홀로서는 책임을 떼어 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한 쌍이다.
자유에 담긴 홀로서기의 무게는, 저 먼 동양의 오래된 경전에서도 노래했다.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경전으로 꼽히는 『숫타니파타』, 그 중에서도 첫 장에 놓인 '무소의 뿔의 경'이다. 아소카왕 시대에 이미 소중히 여겨졌을 만큼 이른 시기의 이 노래는, 여러 게송이 하나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후렴으로 끝맺는다. 무소, 곧 뿔이 하나뿐인 코뿔소처럼 홀로 우뚝 서라는 것이다. 사자가 소리에 놀라지 않고 연꽃이 진흙에 물들지 않듯, 세상의 인정과 집착에 얽매이지 말고 제 길을 오롯이 걸으라는 가르침이다.
법정 스님이 오두막 벽에 이 구절을 적어 두고 되뇌었다는 이야기로도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이 홀로서기는 남을 등지는 독선은 아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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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무엇에도 기대지 않는 대신 제 걸음의 무게를 스스로 짊어지는 자의 자세에 가까울 것이다.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혼자 서되, 그 자유의 대가를 회피하지 않는 것이다.
대구는 어떤가. 대구는 예로부터 자존심이 세고, 제 목소리가 또렷한 도시라고 평가받아 왔다. 남에게 쉬이 기대지 않고 제 길을 고집하는, 무소의 뿔 같은 기질이 있음을 자타가 인정하는 것이다. 그 당당함은 역사의 고비마다 '책임'의 얼굴로 드러났다. 1907년 나라의 빚을 시민의 손으로 갚겠다며 대구에서 불붙은 국채보상운동이 그러했고,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물으며 시대의 어둠에 침묵하지 않은 이상화의 시가 그러했다. 1960년 봄, 불의에 맞서 가장 먼저 거리로 나선 대구 학생들의 2·28 민주운동은 훗날 4·19의 도화선이 되었다. 하나같이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옳다고 믿는 바를 감당한 걸음이었다. 자유로운 기질과 스스로 지는 책임이 만났을 때, 대구는 언제나 가장 대구다웠다.
역사를 채운 그 큰 책임은, 오늘의 일상에서 새로 시험받는다. 작은 책임을 소홀히 한 대가는 뜻밖에 무겁다. 음주운전과 신호 위반, 잠깐의 부주의가 해마다 이 도시의 누군가에게서 돌이킬 수 없는 것을 앗아간다. 그럼에도 반가운 변화도 있다. 고용노동부 재해조사 자료에 따르면 교통사고 다발 지.을 손보고 어린이와 노인의 보행로를 정비한 데 이어, 건설 현장의 안전을 챙긴 결과 올 상반기 산업재해 사망자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크게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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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로운 도시가 그 자유의 무게를 함께 나눠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책임은 개인의 몫이자, 서로를 지키려는 공동체의 약속이기도 하다.
책임은 거창한 결단에만 깃드는 것이 아니다. 약속한 시간을 지키는 일, 빌린 것을 제 모습대로 돌려주는 일, 내뱉은 말에 끝까지 책임지는 일처럼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신의들이 모여 한 사회의 신뢰를 짓는다. 그 신뢰는 돈으로도 법으로도 살 수 없어서, 사람들이 저마다 제 몫을 조용히 감당할 때에만 천천히 쌓인다. 서로가 서로를 믿을 수 있는 도시, 그곳이야말로 자유가 가장 편안하게 숨 쉬는 자리가 아닐까.
책임이라는 말이 무겁게만 들릴 필요는 없다. 그것은 나를 옥죄는 굴레가 아니라, 내가 내 삶의 주인이라는 증거다. 책임 없는 자유가 방종으로 흐르듯, 자유 없는 책임은 억압으로 굳는다. 아이가 자라 제 선택의 결과를 감당할 때 우리가 그를 어른이라 부르듯, 스스로 선택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시민이 많아질수록 그 도시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단단해진다. 자유를 누리는 만큼 책임을 나누는 것, 그것이 성숙한 시민의 품격이 아닐까.
나는 대구가 그런 도시이기를 바란다. 무소의 뿔처럼 당당히 제 길을 걷되, 그 자유의 무게를 기꺼이 제 어깨에 지는 사람들의 도시 말이다. 자존심만큼 책임을 아는 도시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으면서도 아무도 함부로 대하지 않을 것이다. 늦은 밤 아무도 보지 않는 계산대 앞에서 조용히 값을 치르는 손, 그 보이지 않는 선택들이 모여 자유로운 어른들의 도시를 짓는 것이라 믿고 싶다.
이재인 지역과인재㈜ 연구위원
민주운동은 훗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