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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고현민훈 Date2026-09-21 10:39 View135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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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규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이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탈북 당시의 긴박했던 순간과 자유의 땅에서 마주한 신앙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신석현 포토그래퍼 ‘하나님, 도와주십시오. 내 가족을 보호해주십시오. 한 번만 도와주시면 일생 열심히 선하게 살겠습니다.’ 평생 주체사상과 유물론 철학으로 무장했던 북한 외교관이 생사의 기로에서 터트린 절규였다. 하나님이라는 단어조차 반체제의 상징으로 부정적으로 세뇌받아 왔기에 기도하는 법조차 몰랐지만 그는 하늘을 향해 간절히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인간의 힘과 의지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단 한 번도 부른 적 없던 이름이 흘러나왔다. 2023년 11월. 쿠바 주재 북한대사관 참사였던 이일규(54)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흘렀다. 가족을 이끌고 사투 끝에 빠져나온 쿠바 아바나의 호세 마르티 국제공항. 출국 수속을 마쳤지만 비행기 탑승까지 남은 1시간은 그에게 몇 년과도 같은 고통이자 영원처럼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 위원은 탈북 당시 긴박했던 순간을 어제 일처럼 회상하며 “운명처럼 찾아온 기적들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고 고백했다. 북 수뇌부 엘리트, 체제 균열 목격하다 너무 긴박했던 탓에 외교관증도, 집 열쇠도, 자금이 든 가방도 챙기지 못했다. 공항에서 백 번도 넘게 시계를 확인하며 당국자들이 잡으러 오지 않을까 불안에 떨었다. 탈북하다 붙잡혀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거나 처형당한 동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그러나 그의 인생 첫 기도는 헛되지 않았다. 중간 거。에서 송환 위기를 맞닥뜨렸을 때, 현장에 달려온 제3국 주재 대한민국 대사가 “우리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니 절대 건드리지 말라”며 강력히 보호해 극적으로 구출될 수 있었다. 비행기에 오른 그는 가족와 함께 탈출 48시간 만에 대한민국 땅을 밟았다. 모바일 야마토게임 다운로드 첫 기도의 응답이자 자유로 향한 길을 열어준 순간이었다. 그는 북한 체제에서 흔히 ‘금수저’라 불리는 엘리트 출신이다. 1972년 평양에서 태어나 알제리와 쿠바에서 유학했고 명문 평양외국어대를 졸업한 뒤 99년 북한 외무성에 입직했다. 2013년 북한 선박 ‘청천강호’가 파나마에서 억류됐을 때 현장에서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김정은 표창장’과 국기훈장 제1급을 받으며 수뇌부의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이후 외무성 부국장에 오르며 승승장구했다. 2018년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현 대통령) 방북 당시 현장 지휘를 맡아 김정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북한 대외 외교의 핵심 인물로 자리매김했다. 이 위원이 2024년 경기도 수원 원천 안디옥교회에서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오른쪽 두 번째) 목사와 WGN 이사장 임현수(왼쪽) 목사, 김영호(왼쪽 두 번째) 전 통일부 장관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이 위원 제공 밖으로 드러나는 화려한 외교관의 삶 뒤에는 체제에 대한 깊은 회의가 있었다. 노력과 노동에 정당한 보수가 돌아오지 않는 사회, 열심히 일할수록 가난과 고립만 더해지는 부정부패의 현실을 그는 뼈저리게 경험했다. 해외 파견 외교관조차 월급으로는 현지 최소 생활비조차 감당하기 어려워 생계를 위해 불법 장사에 나서는 ‘넥타이 맨 꽃제비’ 신세로 내몰렸다. 무엇보다 그를 두렵게 한 것은 북한 특유의 연좌제였다. 장성택 사건 당시 쿠바 대사이자 장성택의 매제였던 전영진 대사가 자신과 함께 긴급 본국 소환 명령을 받은 뒤 정치범수용소로 끌려가 희생된 일을 목격했다. 한 사람의 잘못으로 일가친척 전체가 파멸되는 비극, 간부들조차 언제 어떤 이유로 좌천되거나 처형될지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이 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그가 가까이서 본 김정은의 모습은 대외 선전과는 달랐다. 릴게임다빈치 이 위원은 “웃기도 하고 화도 낼 줄 아는 평범한 인간이었지만 동시에 가장 가혹한 방식으로 주민을 통제하는 독재자였다”고 회고했다. 체제 수호가 아닌 김씨 가문의 안위를 위해 공포정치를 일삼는 지도자를 보며 그는 뼈아픈 깨달음을 얻었다. 견제받지 않는 인간이 세상에서 가장 무섭다는 사실을. 자식 위한 사투… 두려움 넘어 맛본 은혜 탈북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코로나19 팬데믹 봉쇄가 풀리던 2023년이었다. 막혔던 국경이 열리고 본국 소환 명령이 떨어지자 해외 파견자들 사이에서는 공포감이 번졌다. 자유를 맛본 자녀들에게 북한으로 돌아가는 일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이었다. 자녀에게 지옥 같은 삶을 물려줄 수 없다는 부모로서의 각오, 양가 부모님을 여의며 남겨진 혈육에 대한 부담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진 순간, 그는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했다. 대한민국에 도착했지만 정착 과정은 쉽지 않았다. 비행기 안에서 마주한 한국인들을 보며 ‘내가 이들과 경쟁해서 내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까’라는 두려움과 후회가 밀려오기도 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 것은 따뜻한 신앙 공동체였다. 자유의 땅에서 처음 찾아간 곳은 경기도 수원 원천 안디옥교회(김요셉 목사)였다. 그곳에서 만난 극동방송 이사장 김장환 원로목사는 가족을 따뜻하게 위로하며 안수기도를 해줬다. 김 목사에게 안수기도를 받는 모습. 이 위원 제공 “목사님의 인자한 얼굴에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을 봤습니다. 안수기도를 받으며 주님을 영접했던 당시의 감동과 온기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영적 친정집’ 되어 준 교회 친척도 친구도 없는 낯선 땅에서 가장 힘들어한 사람은 아내였다. 극심한 외로움과 언어 장벽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던 아내의 마음을 가장 먼저 헤아린 것 역시 교회였다. 아내를 교회 성가대에 서도록 권하고 권사들은 살뜰히 돌보며 따뜻한 손길을 내밀었다. 교회 식구들은 매주 식사하며 교제했고 음식 등 생활에 필요한 것들을 챙겨줬다. 야마토게임기 그 사랑 속에서 아내는 활기를 되찾았고 지금은 남편보다 더 열심히 성경을 읽고 쓰며 매주 주일을 기다리는 독실한 크리스천으로 거듭났다. 이 위원은 “교회는 나와 우리 가족의 소박한 행복을 지켜주는 소중한 영적 친정집”이라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 위원의 신앙고백은 솔직하고 인간적이다. 그는 “평생 유물론자로 살아온 탓에 아직 우주에 계신 초자연적 하나님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매주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고지혈증 진단을 받았을 때도 이를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게 몸을 돌보지 않은 결과로 겸허히 받아들였다. 이후 하나님 앞에 술을 끊고 운동하겠다고 맹세한 뒤 금주와 운동을 꾸준히 실천하며 신앙을 지켜나가고 있다. 북녘 동포 향한 간절한 기도 현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으로 활동 중인 그는 언론 기고와 강연을 통해 북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힘쓰고 있다. 최근에는 ‘내가 본 김정은’(미래사·표지)를 출간했다. 경기도 파주 등 북한이 바라보이는 접경지역을 찾을 때면 과거 체제의 기억이 떠올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통스럽다고 했다. 강 건너편에 남아 있는 동포를 떠올리면 마음도 무겁다. “되돌아보고 싶지 않을 만큼 가혹한 체제지만 북한 땅에서 태어난 죄밖에 없는 불쌍한 동포들이 사는 곳이기에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이 위원은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도 간곡한 당부를 남겼다. 북한 체제는 주민들이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통제하며 삶의 개선을 원치 않는 만큼 교회가 복음 전파와 함께 실질적인 지원 방안을 적극적으로 연구해주길 바란다는 것이다. 또 기도의 마지막 끝자락에 북한 동포들을 위한 간절한 마음을 담아주길 부탁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다시는 6·25전쟁 같은 동족상잔의 비극이 재현되지 않고 우리 국민이 화해와 단합을 이루며 북한 주민들도 잘 살 수 있는 길을 찾아가길 바라신다고 믿습니다. 체제와 이념을 떠나 어떻게 해서든 그들도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역할을 다하고 싶습니다.” blank" r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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